느낌 게시판

봄에 향기

고성훈 2006. 3. 26. 11:34

대천해수욕장의 바닷 바람이 옷깃 속으로 파고 든다.

아내와 옷을 여미고 모래밭을 걸으며 먼 바다를 바라다 본다.

참으로 오랜만의 여행이고 바닷 내음이다.


 

 

금요일에 퇴근한 아내가 내일은 어디든지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지" 하고 아침을 맞으니 어디로 가야할 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늘 다니던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게 되었다.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에는 대천에 참으로 자주 왔는데 퇴직하고는

오랜만이다. 대천으로 가는 길이 공주 부근과 청양 부근 그리고

대천 부근이 모두 도로가 확장되어서 자동차 주행이 훨씬 부드러웠다. 

화창한 봄날에 국도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은 상쾌하였다.

 

대천에 도착하니 상춘인파가 제법 많아서 쓸쓸한 풍경은 아니었다.

도착하자 우선 바닷가로 나가서 시원한 해풍을 쏘이며 거닐다가 식당으로

가서 광어회로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는 잘 해주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해변으로 나가서 사진도 찍고 MT 온 대학생들의 노는 모습도

보면서 오후의 편안한 자유를 누렸다. 제법 바람이 쌀쌀하여 아내와

돌아오기로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체력도 달려서 운전하기가 지루했고

도로도 지체되어 힘들었다.

 

요즘 아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제 耳順을 바다보는데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아니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봉사를

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는 갸륵한 마음이다.

 

로사는 나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아 초등학교에 보내면서부터

지금까지 사회봉사활동을 해 왔다.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간을 이용하여

병원, 복지시설, 행정관서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였다. 때로 나는

불평을 한 일도 있다. "아이들 키우기도 힘든데 무엇하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이다.

 

아내는 "남을 도울 수 있을 때가 좋고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고 배우는 바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20여년을 봉사하며 살아온

로사가 막내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니까 이제 자기가

봉사생활을 위해 사회복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속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제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이제 늙어 가면서 강의를 듣는 것도 인생을 즐겁게 사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퇴직을 하고 난 후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듣는 것이 큰 즐거움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고생만한 아내에게 옛날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대학에 나가 강의를 듣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아주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내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발표 준비를 하느라 영일이 없다.

청력도 떨어지고 눈도 나빠졌는데 고생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늘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보람을 느낀다.

 

퇴직을 한 후 나도 '금빛평생교육봉사단', '노인학대 지킴이', 

'노인복지관' 등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힘들고 짜증도

나서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하는 회의에도 빠지지만 그러나

봉사활동은 나의 삶에 활력을 주고 나도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해 준다. 

 

로사가 봉사생활을 위하여 재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외조는 다 해볼 작정이다. 아내가 편안하게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확립하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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