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일 678작전으로 예테보리를 출발하여 10:34시에 스웨덴-노르웨이 국경을 통과하였다. 양국 국경은 강을 따라 이루어졌는데 국경 초소도 검문도 없다. 국경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이드의 제안으로 다리로 이루어진 국경을 도보로 통과하였다. Norway는 ‘북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버스를 달려 Oslo에 도착(11:51)하였다. Oslo의 한식당 ‘남강’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조각공원을 관광하였다.
비겔란 조작공원에는 Gustav Vigelan의 조각 작품 200점이 전시되어 있다. Gustav Vigelan은 1869년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며 15세에 부친이 사망하여 목공소에 취직하였으며, 이때부터 조각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공장이 망해서 폐업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뒷받침으로 조각가의 지도를 받은 후 코펜하겐에서 조각을 배웠다. 카인과 아벨이라는 조각으로 성공하였으나, 로댕을 모방한 작가라는 비평도 들었다. 세 번 결혼했고 염문이 많았는데 나체모델을 구하기 위해 염문을 뿌렸다는 말도 있다. 둘째부인이 오슬로 시에 작품을 기증하고 시에서 생활비를 제공하기도 약속을 했다고 한다. 1943년에 면적 10만평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1947년에 개원하였다고 한다. 공원을 작가는 천국으로 상정하여 정문의 큰문은 닫아두고 작은 문으로 출입하도록 하고 있다. 비겔란의 조각 작품은 곧 좌대에서 내려서서 움직이고 살아서 숨을 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르웨이는 인구가 450만 명이고 수도 오슬로에 50만 명이 거주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1.7배이고 민족은 노르웨이 인이 대부분이고 Sami족이 1%이다. 종교는 루터교가 94%로 국교로 지정하였으나 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다음으로 바이킹 박물관(Viking shop museum)을 견학(14:23)하였다. 노르웨이는 바이킹의 종주국이다. 이유는 천주교 전파에 공헌하였고, 해로를 개척하였으며, 현 미국 역사를 바꿔놨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에릭슨 선장이 콜럼버스보다 100년 전에 미 대륙을 발견하고 윈난이라고 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금 바이킹 박물관에 있는 바이킹 배는 1860년 무덤용으로 사용했던 배를 찾아낸 것이다. 이 배에는 전통의상이 100종이 발견되었으며, 880년에 배를 제작하여 60여 년간 사용한 후 무덤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선조들은 793년에 영국 동부를 침략하여 바이킹 시대를 개막하고 지중해까지 진출하였다. 그 후 1066년에 바이킹 시대는 폐막되었다. 박물관의 바이킹 배는 지금도 형체를 그대로 복원하여 그 시대의 조선기술과 항해능력을 가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어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오슬로의 칼 요한 거리와 ‘돔 교회’를 관광하였는데 ‘돔 교회’는 노르웨이 12주 교회의 본산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한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오슬로 시청을 관광하고 국립미술관을 돌아보았다. 투어을 하는 동안 날이 저물어 금강 반점에서 저녁식사(17:40)를 하고 오슬로 스칸딕 호텔에 체크인 하였다.
2005년 4월 2일 789작전으로 출발하여 오슬로 남산꼭대기에 있는 스키점프대를 먼발치에서 보고, 시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골을 향하여 버스를 달렸다. 이제 오늘 하루는 Fjord를 관광하기 위하여 이동하는 시간이다. 노르웨이 남부는 평야와 구릉으로 이루어졌으며, 산에는 소나무, 자작나무, 측백나무, 잣나무가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다. 오전을 달려서 골에 도착 Solstad Hotel 부속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산골마을을 구경하는 동안에 로사는 가이드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기능성 식품(Omega3)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스키리조트 지역으로 유명한 햄스달을 경유하여 5시간여를 달려서 레르달에 도착하여 Lindstrom Hotel에 체크인 하였다. 로사는 이 곳 마트에서 기능성 식품을 더 구입하였다.
2005년 4월 3일 678작전으로 레르달을 출발하여 본격적인 Fjord 관광에 나섰다. Fjord는 100만 년 전 빙하시대에 어름으로 되어 있던 땅이 녹아내리면서 U자형 계곡을 이룬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은 풍광이 빼어나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오늘의 관광이 노르웨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Fjord로 가는 길 몫에 있는 레드달터널은 길이가 24.5㎞로 5년간 공사를 하여 2001년에 개통하였다고 한다. 세계에서 터널 작업에는 노르웨이가 으뜸이라고 한다. 버스로 Flam에 도착하여 로맨틱 기차를 타고 미르달을 왕복하면서 아름다운 피오르드를 감상하였다. 기차는 프램에서 830m의 미르달까지 교묘하게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피오르드를 조망하도록 설계되어 관광객의 시선을 꼼짝 못하게 잡아 두었다.
다음에는 구드방겐으로 이동하여 구드방겐에서 플램까지 크루즈를 탐승하고 2시간 동안 선상 피오르드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11:35시에는 쿠르즈를 탑승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어우러진 피오르드를 구경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로사와 나는 이 아름다운 피오르드에서 작품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필름 한통을 모두 찍어버렸다.
피오르드를 마치고 필름의 Fretheim Hotel에서 점식식사를 하고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릴레함메르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지금부터는 스웨덴 스톡호름으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에는 요정이 있다. 노르웨이 요정은 퀴가 크고, 난쟁이이며, 매부리코에 꼬리가 달린 ‘트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트롤의 역할은 다양하다고 하며, 노르웨이 사람들은 하지에 요정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한다.
몇 시간을 버스로 달렸는데 보이는 것은 눈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전나무, 그리고 빨간 벽채에 까만 지붕을 씌운 집들의 연속이었다. 오지에까지 집들이 많아서 물어보니 이것은 도시인들의 별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달려서 저녁 7:30시에 릴레함메르에 도착하여 First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아무리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이런 오지인 릴데함메르까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2005년 4월 4일에는 오전 시간이 자유 시간이었다. 로사와 늦잠을 자고 호텔뷔페에서 식사를 한 후 릴레함메르 시내 구경(08:00)을 나섰다. 우선 Kiwi 마트에서 기능성 식품을 구입하고 스키용구 판매점에서 사위와 아들에게 줄 파카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시내를 돌면서 구경을 하였다.
점심식사 후 호텔을 출발하여 동계올림픽 당시 사용하였던 스키점프대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스웨덴으로 가기 위하여 칼스타드를 향해 달렸다. 3시간여를 달려서 노르웨이와 스웨덴 국영을 통과하게 되었다. 노르웨이가 EU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서 노르웨이에서 구입한 상품에 대한 텍스 후리 펀드를 환불하였다.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검문소도, 검문을 하는 경찰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오직 국경지대에 양국 간의 우의를 상징하는 기념탑이 있을 뿐이었다. 다시 1시간여를 달려서 스웨덴의 칼스타드에 도착하여 북경반점에서 식사를 하고 스칸딕 호텔에 여장을 풀고 수산나와 다니엘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호수 변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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