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게시판

풀과의 전쟁

고성훈 2005. 8. 17. 17:17

애기 밤나무를 위하여 풀을 베기 시작 한 것이 지난 6월부터

였는데 장마가 닥쳐서 좋은 날을 골라서 하다보니

8월 초에야 마무리를 짖고 마음이 날아갈 듯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10여일이 지난 다음에 밤나무가 편안하게

잘 자라고 있겠지 하고 다시 찾아갔는데

웬걸 6월에 제초를 한 곳을 가보니 풀을 베었던

자취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또다시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밤나무가 많이 자랐는데도 풀 속에 갇혀서 머리끝만

조금 보일뿐이다. 또 마음이 답답해 져서 시간을

내서 새벽에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산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몸단장을 하고 밤나무 밭으로 들어서니 풀이 가슴까지 찬다.

이슬이 내려서 비를 맞은 듯이 옷이 젖고 신발에는 물이

들어와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신발속에서 물이 이리저리 밀려

다닌다.

 

밤나무를 찾으려면 심은 간격을 계산하면서 한 참을 찾아야

겨우 답답하게 머리끝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숨막히는

아기를 찾을 수가 있었다.

 

적을 물리치는 전쟁을 치루듯이 풀과 잔잔한 나무들을

향하여 낫을 휘둘렀다. 너무나 풀이 자라서 성과가 나지를

않는다. 새벽의 희뿌연 안개속에서 나혼자 칼 춤을 추듯이

낫질을 하니 추풍악옆처럼 풀들이 스러진다.

 

2시간을 칼 싸움을 하고 나니 너무 피곤해 일단 하산하여

쉼터에서 준비해 간 김밥과 바나나로 요기를 하고

컨디션을 회복한 다음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아침 8시 안개도 모두 개고 밝은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시간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낫을 휘두른다.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을

방물케하는 힘든 싸움이었다.

 

수시로 물병에 물을 마시며 낫질을 하다보니 기온이 너무

뜨거워서 더 이상 일을 하기는 무리였다. 풀베던 구역을

마무리하고 하산하니 10시였다. 전체 면적의 1/5은 했을 듯하다.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을 올려다보니 새벽부터

힘들게 일한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부자가 된 듯한 흐뭇한

느낌이 든다.

 

풀과의 전쟁은 아마도 가을까지 계속되어야 할 듯하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내가 이제 황혼기에 풀과의 전쟁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1,2년을 보내면

아마도 밤나무들이 좋은 결실로 보답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밤나무 농장은  일을 하고 나면 무엇인가 해

낸듯한 성취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밤나무 농장에 오면

행복하다. 혹자는 무엇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체험이 없이는 이해하지 못할

노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보람이 있다.

 

오늘 하루도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넉넉한 만족스런 느낌으로 가득하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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