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일에서 터키로 가는 날이다. 프+로는 06:30분에 기상하여 10:00분에 사발라면과 햇밥(인스탄트 식품)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한국식 라면에 고추조림과 무말랭이를 반찬으로 한 식사는 맛있고 생기 넘치게 하였다.
오늘은 터어키로 이동하는 날이라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되어 전철을 타고 무명공원으로 가서 산책을 하였다. 공업지대의 전혀 가꾸어지지 않은 작은 공원은 한산하고 그런 대로 운치가 있었다. 공원 안에 오래된 작은 성채가 있는데 그 곳의 LANGNESE CAF'E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따듯한 창가에서 정담을 나누었다.(13:40)
그런데 그 카페에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왔는데 거의가 연금생활자로 부부가 동반하여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침식사를 하고는 부부가 산책하고 한유하게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카페에서 저녁을 들고 집으로 가서 쉰단다.
점심식사 후 GELSENKICHEN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17:00분에 저녁식사를 하고 기차로 듀셀도르프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이 때 윤병일 씨가 추천한 터어키어 통역으로 오석웅 바오로가 동행하였다. 타려고 했던 기차가 취소되고 중간에서 환승하면서 기차시간에 쫓겨 다름박질을 치며 우왕좌왕하기도 하였는데 가이드인 바오로가 경험이 없어서 더 했다.
드디어 듀셀도르프 공항에 도착(18:20)하여 탑승 준비를 하고 몇 시간을 대기하다가 21:45분에 ISTANBUL AIRLINE 편으로 터어키를 향하였다. 터어키 비행기는 규모가 아주 작았으며, 비행동안 귀가 아파서 괴로웠다. 동승한 터어키인들은 순박해 보였고, 차림새에서 터어키인의 생활수준이 낮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로는 터어키 시간으로 01:00분(터어키는 우리나라와 7시간의 시차가 있었음)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터어키인 가이드 에이웹 씨가 버스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에이웹 씨는 38세의 독신으로 아이 낳는 것은 싫고 아이를 키우고는 싶다는 조금은 괴짜 같기도 하였지만, 이스탄불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가이드 국가고시를 합격한 엘리트였다. 터어키 여행 동안 에이웹의 화란 애인 니네카가 동행하였다. 가이드가 여행안내에 애인을 동반하는 것이 프+로의 생각에는 직무에 불충실한 것 같이 비춰졌다.
우리는 관광버스로 아블로니아 호텔로 가서 503호실에 투숙하였다. 호텔 측에서 식사를 못하신 분을 위하여 샌드위치가 준비되었다고 하여 로사와 함께 가서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샌드위치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식빵을 가운데를 가르고 야채를 조금 넣은 것이었다. 로비에서 미카엘과 그 형을 만나 소주 몇 잔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08:00시에 기상하여 호텔식당에서 빵과 계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09:00).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블루모스크였다. 블루모스크는 1609년부터 1616년에 슐탄 아메탄이 건축했다고 하는데 홀 안의 4개 기둥은 코끼리 다리 형상이었으며, 벽채와 천장의 문양은 타일과 색칠로 화려하게 되어 있었다. 옛날 기도 때에는 사원내의 높은 자리에 사제와 슐탄이 앉았다고 하며, 사원규모는 높이가 54M이고 가로가 43M, 세로가 51M라고 한다.
사원 앞에는 4세기경에 건설한 가로 117M, 세로 45M의 전차 경주장이 있었으며,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빌리스크 탑이 있었다. 이집트 왕에 대하여 적혀 있는 이 탑은 4세기에 승전기념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블루모스크 바로 옆에 소피아 성당이 있는데 터어키에 천주교가 융성했을 때 지었으나 그 후 회교가 들어와서 지금은 회교사원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피아 성당의 벽화 위에 회교식 그림을 덧칠하여 지금은 벽 속의 천주교 성화가 들어 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톱카피 성을 관광하였는데 이 성은 1462년부터 19세기까지 슐탄이 살았던 곳으로 슐탄의 주거시설부터 주방의 집기까지 잘 보관되어 있었다.
12:25분에 SSALA 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14:10~16:00까지 GRAND BAZAAR에서 쇼핑을 하였다. GRAND BAZAAR는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형태의 재래시장으로 복잡하고 활기가 넘쳤다. 프+로는 윤 신부님, 도마부부, 수진 모녀와 함께 쇼핑에 나서서 재미있는 흥정도 많이 했다. 세실리아가 280불하는 양가죽 코트를 200불에 흥정하여 샀으며, 로사는 거기에서 5불을 깍아서 195불에 샀다. 그리고 프는 신부님과 함께 18불 달라는 아라비안 단도를 10불에 샀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쉬었다.
프+로는 06:00분에 기상하여 호텔 식당에서 빵과 계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ANKARA를 향하여 출발(07:00)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1974년에 건설하였다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보스보루스 해협의 거대한 다리가 나왔으며, 이 다리를 건너서 E5번 고속도로를 13:00까지 달려 와서 YENI CIFTLIK RESTRANT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생음악이 있고, 벽난로에서 장작불이 불게 피어오르는 격조 높은 식당이었다.
점심식사 후 앙카라 국립박물관을 보았는데 전시자료는 많지 않았으나 전시물은 고대의 거대하고 우람한 석조물들이 많았으나 전체적으로 규모도 작고 초라한 느낌이었다. 선조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후손들이 관리하고 홍보하지 못함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1921년에 건립하였다 하며, 이름은 ANADOLU MEVENIYETLERI MUZESI이었다.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다시 황량한 터어키 평야지대를 달려 19:20분에 KAPPADOKIA에 있는 AVANOS IRMAK OTEL 408호에 투숙하여 저녁식사를 하였다. 카파도키아는 비수기여서 호텔에 투숙 손님이 우리 일행뿐으로 썰렁하기는 하지만 VIP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난방을 하지 않았던 탓으로 방안이 몹시 추워 로사와 체온으로 추위를 달랬다.
터어키는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4배라고 하는데 과연 넓고 평야도 많았으며, 개간하지 않은 황무지와 같은 땅이 너무도 많아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은 잠재하고 있었지만 터어키인들이 게을러서 아직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눈에도 보여 안타까웠다. 양 대륙에 걸쳐서 발전한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며, 오늘의 쇠잔한 터어기에 연민의 정을 느꼈다.
프+로는 06:00분에 기상하여 식사를 하고 카파도키아 관광에 나섰는데, KAPPADOKIA라는 지명은 카파도아라고 하여 아름다운 말의 도시라는 것에 연유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촛대바위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지형이 많은데 이것은 화산과 용암이 분출하여 흘러내리면서 바람의 영향으로 이와 같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위모양의 지형들이 파고 들어가기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견고하여 이 지역의 사람들이 기원전부터 그 곳을 파고 집을 짓고 살면서 도시를 형성하였으며, 지금도 일부 살고 있었다.
프+로는 G0REME VALLEY라는 곳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한 다음 UNDER GROUND CITY에 도착(08:40)하였다. 이곳은 천주교가 융성하였다가 3세기 경 터어키 지역에 회교가 들어오면서 그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지하로 숨어 들어가서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지하도시이다. 지하도시는 땅을 파고 들어가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주거 공간, 통로, 우물, 공기구멍, 통로차단시설 등등 오밀조밀하게 잘 설계되어 있었고, 제일 지하에는 성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시대 교우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기 위한 고통과 시련을 보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14:45분부터는 초대교회의 성당을 찾아보았다. 역시 박해에 밀려 산 속에 흙을 파고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살던 초대교회로 바실 성당, 애플교회 등 13개의 성당을 보면서 흙벽에 많은 벽화를 그리고 대리석 건축과 같이 성당의 모습을 땅굴을 파면서 만들어낸 예술품에 감탄하였다.
프는 지하도시와 초대교회를 돌아보면서 너무 지쳐서 다운 직전이었다. 그래서 카페트 전시관(생산모형 전시, 판매장) 견학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쉬다가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로 닭고기를 먹고 쉬었다.
프+로는 06:00분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파무카레를 향하여 출발(08:00)하였다. 터어키 땅덩어리가 크다고는 하지만 4시간을 계속 지평선만 보이는 평야지대를 달렸다.
이곳을 달리면서 터어키 농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흙벽으로 세우고 바람이 강하여 초가지붕 위에 흙을 덮어놓았는데 보기에도 초라하고 처량해 보였다. 그러나 좁은 땅에서 복닥거리는 우리 현실과 달리 얼마든지 개간할 수 있는 땅이 널려 있어 너무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달려서 12:00분에 HONYA에 도착, HOROZEUHAN 식당에서 중식을 하였다. 이 식당은 옛날 역참(驛站) 시설을 이용하여 식당을 꾸민 것이라고 한다. 옛날에 낙타가 하루에 40KM 정도밖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지방으로부터 수도까지 40KM마다 역참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터어키 여행 중 가끔 이러한 역참 시설을 볼 수 있었다.
프+로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터어키 여자아이들 네 명이 있어서 나이를 물으니 11살이라고 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우리가 버스로 출발하여 가다가 그 애들이 보여서 손을 흔들었더니 돌팔매질을 하여 놀랐으며, 가슴한 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그리고 KONYA에 있는 수도원을 구경하였는데 이곳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선각자가 세운 수도원(MEVLANA MUZESI)으로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수도자들이 모여 교육을 받고 수련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잘 보전하고 있었다. 수도원에서는 1000명을 동시에 교육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터어키 고원지대를 통과하여 20:00에 PAMUKKALE에 있는 호텔 COLOSSAE HOTEL에 도착하였다. 로비에 들어서니 제법 고급호텔 같은 분위기여서 조금은 위축되는 듯하였는데 객실은 형편없는 여인숙과 같아서 실망이 컸다. 저녁식사는 호텔식당에서 뷔페식으로 마치고(20:30), 온천 수영장이 있다고 하여 로사는 시간이 부족한데도 부지런을 피워 수영을 하고 좋아하였다. 호텔은 난방도 잘 안되어 잠자는 것도 고생스러웠다.
프+로는 06:40분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서(08:00), 파무카레 야외 온천장 지역에 도착(09:00)하였다. 입구에는 수많은 무덤이 나타났다. 지진으로 쓰러지고 무너진 무덤들이 발굴되어 복원 중에 있었다. 로마시대의 고대도시였던 곳으로 그 시대의 야외극장이 있었고 여러 석조유적이 즐비하였다.
그리고 노천 온천장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온천수의 석회성분이 마치 폭포처럼 흰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노천온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도랑처럼 흐르는데 양말을 벗고 들어가니 따듯하고 개운한 느낌이었다.
파무카레 관광을 마치고 에페소를 향하여 가는 도중 데니슬리 CITY를 통과(09:55)하였는데 이 도시는 3다(三多) 도시로 미녀, 닭, 먼지가 많다고 한다. 파무카레에서 에페소에 이르는 지역은 넓은 평야지대로 문자 그대로 옥토였다.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땅도 비옥하였으며, 대단위 농장들이 계속되었고, 터어키에서는 부유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버스로 계속 달려서 EPHESUS(에페소)에 14:10분에 도착하였다. EPHESUS는 4번 건설되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은 3번째 건설했던 도시의 유적이라고 한다. EPHESUS는 로마시대의 지방 도시로서 안토니오가 애인인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맞이하였다는 항구도시(지금은 항구가 아님)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지진으로 땅에 묻혀버렸던 도시를 지금 한창 발굴 및 복원 중에 있는데 로마시대의 변방의 한 도시가 이렇게 거대함을 보면서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해본 윤 신부님에 따르면 그리스, 로마의 유적도 에페소보다는 보 잘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유적으로는 도서관, 신전, 화장실, 왕궁, 시청, 부자들 동네, 원형극장(25,000명 수용), 리정표(창녀집 안내), 목욕탕 등등이었다. 유적을 돌아보던 중 원형극장에서 신부님의 제안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홍도마가 제일 먼저 선구자를 멋지게 불렀고, 두 번째로 프가 칠갑산을, 세 번째로 신부님, 네 번째로 대구 미카엘의 형님이, 다섯 번째로 수진이가 노래를 불러 옛 로마시대 고대도시의 원형극장에 울려 퍼졌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창녀의 집을 인도하기 위한 이정표이다. 지역의 부자들이 이 도시를 방문할 때의 안내판이다. 부자들은 도시에 들어오면 우선 목욕을 하고 도서관으로 가서 문서를 정리한 다음 지하 비밀통로를 통하여 창녀에게로 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객고를 풀고 화대를 내는데 창녀들은 신전에서 일하는 사람들로서 오늘날의 창녀가 아니라, 부자들로부터 기부금 내지는 세금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관광을 마치고 IZMIR에 18:00분에 도착하여 AKSAN OTEL에 투숙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만 풀고 바로 신부님 방에서 미사를 드렸으며, 프+로는 군에서 고생하는 다니엘을 위한 생 미사를 넣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호텔식당에서 마치고 쇼핑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시 변두리의 후진 곳으로 도시서민의 삶의 수준과 실상을 대변해 주었다. 일행이 살만한 물건을 발견할 수가 없었으며, 주변의 더럽고 음험함에 질려서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프+로는 07:00분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풍요가 넘치는 비옥한 평야를 계속 달려서 13:40분에 BURSA에 도착하였다. BURSA는 터어키의 5대 도시(제1도시 이스탄불, 제2도시 앙카라, 제3도시 이즈밀, 제4도시 아다나)로서 설탕, 자동차(외국 조립공장), 가전제품, 실크, 과일로 유명하다고 한다.
BURSA PARK 안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BURSA 사원을 구경하려고 하는데 마침 기도시간이 되어 대충 보고서 BURSA BAZAAR에서 쇼핑(14:00)을 하였다. 로사는 이곳에서 장인 장모 선물과 친구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샀고, 프의 넥타이와 마후라를 샀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에 실크박람회가 열린다고 한다.
16:00분에 브르사를 출발하여 이스탄불로 가는 길에 해가 지는데 낙조가 장관이었다. 그리고 아시아쪽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배로 바다를 건너려고 가는 길이 정체가 되기 시작하여 계획보다 훨씬 늦게(20:40) 이스탄불의 AVLONYA OTEL에 도착하였다. 본래 계획을 일찍 도착하여 쇼핑시간을 갖기로 하였으나 틀어졌고, 터어키 정통 케밥을 먹기로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자 짐만 정리하고 도마씨 방에서 감사미사를 드렸다. 프+로는 가정미사를 넣었다. 미사 후 곧 케밥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프+로는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하였다. 도마부부는 여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기후와 음식에 잘 적응하여 보기에 좋았다. 호텔로 돌아와 쉬었는데 여행이 길어지면서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기분이 조금은 우울해 지고 있어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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