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유럽 여행 첫날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출발준비를 하고 수산나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나(11:40) 택시로 종합청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미카엘 부부와 함께 공항버스를 타고 대전을 출발(12:15)하였으며, 대덕호텔 정류장에서 도마부부와 배수진 모녀와 합류하였다. 프+로는 마음이 약간은 들뜨고 설레며 즐겁고 신나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평일의 대체로 한산한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김포공항에 도착(15:00)하였다.
김포공항에서 여행을 함께 할 미카엘 형님부부와 동생부부, 윤 신부님과 합류하여 수속을 마치고 지루하게 3시간여를 기다리고서야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가 비행기(CX-411, CATHAY PACIFIC)에 탑승하여 이륙(17:45)하였다. 그런데 비행기 사정으로 우리는 이코노미 크라스에서 일약 비즈니스 크라스 자리를 얻게 되어 횡재한 느낌이었으며, 저녁은 기내식으로 로사는 치킨을, 프는 생선을 먹었다. 프는 위스키 2잔과 맥주 1캔을 반주로 하여 포식하였으나, 로사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비행기는 홍콩에 21:25분에 도착하였는데 홍콩과는 1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우리는 홍콩공항에서 3시간여를 기다린 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CX-289, CATHAY PACIFIC)에 탑승(01:10)하였는데 홍콩시간으로는 12:10분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예약한대로 이코노미 크라스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동안 기내식이 2번 제공되었는데 저녁은 생선과 치킨을 먹었으며, 아침은 계란과 햄을 먹었다.
먼저 번 미국여행 때의 JAL보다 CATHAY PACIFIC이 훨씬 비행기도 좋고 승무원도 친절하였다. 그러나 비행기를 장시간 타는 일은 역시 지루하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음악도 듣고 영화도보고 게임도 즐기고 잠도 자면서 비행하였다.
프+로는 독일 시간으로 05:25분(시차는 8시간 늦음)에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도착하여 먼 항공기 여행에서 무사히 도착하게 해하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공항에는 윤 신부님의 동생인 윤병일씨와 김 토마스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른 새벽이었기 때문에 07:30분까지 공항에서 여행일정에 대하여 토의하고 당일 여행 코스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독일 관광을 시작하였다. 우선 경관이 수려한 라인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아름다운 강산을 구경하였다. 가는 도중에 MAINZ시가 있는데 그 곳에는 활자발명가 구텐베르그 기념관이 있었으며, 한국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 진본이 있다고 한다. 08:30분에 라인강에 도착하여 배에 차를 싣고 도강하였는데 라인강은 강폭도 넓고(한강보다는 좁음) 수심도 깊어서 아주 큰 배들이 운항을 하고 있어 홍수 때에만 물이 만수 되는 우리나라와 전혀 달라 부러웠다. 그리고 강변을 따라 가는 여기저기에 수백 년 된 많은 고성(古城)들이 있었으며, 지금은 호텔이나 유스호스텔, 학교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강 한가운데에는 옛날 세관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09:10분에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에 도착하였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언덕에 올라보니 라인강은 협곡으로 언덕 위는 드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라인강의 경치를 만끽하였다. 라인강 변을 따라 내려오면서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습도 온도 지질을 잘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라인 강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성모성지인 센트타트 수녀원을 방문하였다. 그 곳의 작은 경당(HAUS WASSERBAR)에는 300년 된 은혜의 성모님이 모셔져 있었는데 이태리 풍의 그림으로 그린 성모님이었다. 그곳의 성물판매소에 고상을 구입하였는데 로사가 고상을 보려고 내리다가 놓쳐서 촛대를 망가트려 당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12:10). 식사 후 TRIER 성지로 향하였다. TRIER 성지는 예수님의 성의가 소장된 성당이 있고, 헤레나 성녀가 살았던 곳이며, 사도 마지아 무덤이 있는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라인 강과 모젤 강이 합쳐지는 삼각주 지역이기도 하였다.
14:00에 TRIER시에 도착하니 성문이 200년이 되었다 하며, 산꼭대기에 성모상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15세기에 세운 모젤 강 다리도 있었다. 15:10분에 TRIER 대성당 부속 성모성당에 도착하여 참배하고 성당 내를 돌아보았다. 이곳에는 스페인 풍의 1700년대에 그린 임신하신 성모님 그림이 있었다.
이어서 마지아 성당이며 트리어 대성당인 주교좌 성당을 순례하였는데 예수님 성의가 보관되고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나무가 있으며, 성당내의 기념관에는 옛날 초대교회 때의 각종 성서들이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았던 못과 안드레아 성인의 발목뼈가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를 몫은 쇠사슬도 있었다. 예수님의 성의는 제대 뒤에 방을 마련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이렇게 독일 첫날 관광을 마치고 GELSENKICHEN 시에 도착(20:30)하여 IBIS HOTEL 412호실에 투숙하였으며, 저녁식사는 스테이크 하우스 DUBROVNIK STEAKHAUS에서 하고, 잠자리에서 로사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프+로는 05:30분에 기상하여 준비를 마치고 PIANO CAF'E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인구 90만의 대도시 퀼른으로 출발(10:00)하였다. 퀼른 성당은 서기 1200년부터 1880년까지 약 600여 년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성당 높이가 160M, 천장 높이가 44M이며, 500년 된 성모 목각이 있는 성모 순례 성당이다.
퀼른 성당에 도착(11:20)하여 순례하였는데 베드로 성인이 거꾸로 매달려 죽은 성화가 있었고, 스텐드그라스에 성탄 및 치명 성화가 있었다. 그리고 성서 4 저자 상이 있었으며, 4대 교부(예로니모, 암부로시오, 그레고리오, 아오스팅) 상 및 성모영보 그림과 은혜의 성모상이 있었다. 또한 동방박사 3왕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으며, 고상은 1000년 묵은 나무로 1000전에 제작하였다고 한다. 퀼른 성당의 우람하고 거대한 모습과 수십만 개의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은 그야말로 건물 전체가 예술작품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건설한 건축물은 아마도 다시 있을 것 같지 않은 걸작이었다.
그리고 라인 강변으로 나가서 로마시대의 원형 목욕탕이 지하에 있는 마르틴 성당을 보았으며, 1235년과 1685년에 지어 지금까지 잘 보전된 개인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햄버거 하우스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13:00). 독일에는 보통 300년에서 500년 된 건축물들이 수두룩하며, 몇 천 년씩 된 유적이 허다하여 독일인의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능사로 하는데 독일인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14:00시에 벨기에 노틀담의 반늬(BANNEUX) 성지로 출발하였다. 반늬 성지는 1933년 1월 15일 현대 가정문제를 위해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이다. 당시 16세 소녀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성모님이 나오라고 손짓을 하여 나가려고 하니 엄마가 말렸으나 나가서 성모님을 만났다고 한다. 이렇게 8번 발현하셨는데 성모님의 제목은 구세주의 어머니, 가난한 이의 동정녀이며 가정을 찾아오셨으니 가정성화를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성모님께서 샘물을 가르치시며 이 물은 병을 고치기 위해 보관된 것으로 병이 치유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또한 2차 대전시에는 반늬 주민이 기원하여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1984년에 교황님이 다녀가셨으며, 2001년의 교황 재방문에 대비하여 교회를 지으려고 하는데 이미 전에 나무를 베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여 걱정 중에 토네이도가 성당 지을 곳의 나무를 베어주었다고 한다. 우리가 순례하는 날은 겨울비가 내려 음산하고 추웠으나 정한 마음으로 순례하고 윤 신부님 주제 하에 작은 경당에서 감사 미사를 올렸다.
반늬 성지에서 조금 내려와서 벨기에에서 최고로 오래된 십자가인 1000년 된 나무 십자가가 있는 작은 경당에 들렸다. 밭에서 발굴하였다는 이 십자가는 고증에 의하면 예수님이 제의 색깔에 따라 옷을 갈아 입었다는 특이한 십자가였다.
16:00시에 출발하여 독일로 오는데 독일경찰에 정지명령을 받았다. 독일과 벨기에는 유럽연합 결성으로 무비자로 자유롭게 왕래하였는데 지금도 국경선에는 그 옛날 입․출국 검사를 하던 초소 건물이 남아 있었다. 벨기에에서 무단 입국자를 구제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무국적자가 다시 독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차원에서 우리 승합차를 오인하고 정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사람으로 무비자로 벨기에와 독일 국경을 다닐 수 있다고 말했으나, 얼마 전에 법이 바꿨다고 응수하다가 우리에게 결국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본래 계획은 OVER HAUSEN CENTER(대형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저녁식사를 할 작정이었으나, 독일경찰과의 실랑이로 시간을 빼앗겨 스페인 식 식당 DON CARLOS에서 식사만하고 IBIS HOTEL로 돌아와 쉬었다. 프+로가 독일의 일부를 돌아본 결과 독일은 큰 산이 별로 없이 많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평야가 많았다.
여기서 프+로는 며칠간 터키 여행을 하였다.
프+로는 05:00분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아타튜르크 공항에 도착(06:30)하여 탑승수속을 밟고 대기하다가 08:00분에 공항을 이륙하였다. 터어키 여행 1주일이 이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하여 별로 얻은 것이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섭섭한 느낌이었다.
기내식사가 나왔지만 프+로는 어제 저녁의 케밥이 속을 나쁘게 하여 먹는 둥 마는 둥하였다. 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고 신부님이 본당 미사 관계로 오늘 먼저 귀국하게 되어 기분도 가라앉아 있었다.
10:30분 듀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하니 윤병일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제 신부님과 헤어질 시간인데 혼자 떠나는 신부님도 몹시 심난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도마씨가 용기 있게 신부님을 공항까지 배웅하겠다고 하여 다행이었고, 도마씨의 용기와 마음씨가 돋보였다.
신부님과 헤어져 우리들은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점심을 햄버거로 하고 에쎈으로 향하여 기차를 탔다. 에쎈에 도착하여 백화점에서 쇼핑시간을 가졌다. 로사는 칼과 혜승이 옷 두벌을 샀다.
백화점 앞에서 동료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반겼다. 한국말소리가 들려서 귀가 번쩍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유럽여행 중이라고 하니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며 동족애를 보여주었다. 외국에 나가 봐야 애국자가 되고 동족의 그리움을 안다든가?
그 후 기차를 타고 겔센키르흰에 도착하여 IBIS HOTEL에 여장을 풀었는데 유럽여행을 이곳에서부터(3박) 시작하여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느긋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쇼핑의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모두들 바쁘게 시장으로 나갔고, 로사도 벼르던 밥솥 2개와 쌍둥이 칼을 구입하였다.
저녁식사는 풍화주루(豊華酒樓)라는 중국음식점에서 했는데 프+로는 모듬 짬뽕으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중국음식과는 좀 달랐지만 그런 대로 입맛에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소주 생각이 나서 바오로에게 어떠냐고 했더니 삼갔으면 좋겠다고 하여 그래도 나는 먹어야겠다고 하니 바오로가 먼저 먹겠다고 나서 사람의 마음의 간사함을 볼 수 있었다.
또 겔센키르흰에 도착하여 모두가 쇼핑에 여념이 없는데 바오로가 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고 건방을 떨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지리도 모르니까 통역을 둔 것이지 겔센키르흰만 하여도 며칠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고 쇼핑을 할 만 한 곳인데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함께 1주간을 생활했기에 참았다.
그런데 신부님을 모시고 간 도마씨가 늦도록 오지 않아 모두 애를 태웠는데 다행이 무사하게 돌아와 주어 감사했다. 긴 여행으로 프+로는 심신이 지쳐 있어 작은 일에도 과민하게 반응할 것 같아 조심을 하였다.
이번 독일, 터어키 여행이 끝나는 순간인데 무엇인가 섭섭하고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 아닌가 생각도 되고 너무 지쳐서 힘든 생각이 압도해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마음이 부듯하고 즐겁지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여행은 1주 이상은 계획하지 말고 참여도 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정으로 여행할 것을 결심해 본다.
프+로는 07:30분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니 윤병일씨와 김토마스씨가 와서 호텔을 출발(09:10)하였다. 그리하여 12:1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였다. 토마스씨가 편지 20여 통을 고국에 가서 붙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모든 출국수속을 마쳐주고 윤병일씨와 헤어졌다. 독일에서 산 물건에 대한 세금을 환불받는 한국인의 알뜰함도 보여주었다. 대기하면서 탑승시간이 13:00분인 것을 14:00분으로 잘 못 알아 잠시 허둥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태가 있었지만 무사히 탑승하여 14:00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륙하였다.
독일에서 홍콩까지 긴 비행시간은 힘들고 짜증나는 시간이었지만 잠도 자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보냈다.
프+로는 08:20분(홍콩시간)에 홍콩공항에 도착하여 환승을 위해 2시간여를 대기하였다. 대기하는 동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해프닝이 교훈이 되어 쇼핑을 하면서도 서로 주의하였다. 로사는 홍콩 면세점에서 술을 한 병 샀다.
그리고 10:40분에 홍콩을 출발하여 14:4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김포공항에서 출국검사를 받는데 내가 그랜드바자에서 산 단도가 문제가 되었다. 나는 포기하고 가자고 하였으나 로사가 형평성을 들어 항의하여 결국 칼을 찾을 수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와 대전행 공항버스를 타고(16:20) 달리는데 일행 모두가 지쳐서 잠을 자며 왔다. 대전 종합청사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택시로 집에 돌아 왔다. 수산나가 반갑게 맞아주었고 집에 도착하니 이제야 마음이 푸근하고 피로가 한 몫에 몰려들어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골아 떨어 졌다. 귀국하여 1주일은 시차에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밤에는 잠을 설치고 낮에 자고 하였다.